병원에 가기 전에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내가 남들도 느끼는 별 것도 아닌 감정을 가지고 괜히 오버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우울증 약을 먹고 단순히 우울한 기분만 개선된 것이 아니라 다른 감정들도 개선이 많이 된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육아를 지속한 이후 오래전부터 경증의 우울증을 앓아왔다 회복되었다 했던 것일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번 포스팅에서는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처방약을 먹고 상당히 개선되었던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징후 1 : 성격이 변했다고 느낄만큼 화가 많아지고 예민해진다.
저는 제 자신을 물과 같은 성격이라 생각했습니다. 특별히 좋고 싫음이 크게 없고, 사람에게 잘 맞춰주고, 화가 나는 상황에서도 크게 화가 나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육아휴직의 어느 순간부터 화가 많이 쌓인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작게는 아이가 아이라서 하는 행동에 화가 나고, 남편이 별 생각없이 나를 도우려고 하는 행동이나 말에도 화가 나고, 친구의 별 것 아닌 카톡에 화가 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디 가게를 갔는데 점원이 바빠서 퉁명스럽게 응대하는 것을 보고 나를 얕잡아 보는 것이 아닌가 싶어 화가 끓어올랐습니다.
육아로 고립되던 와중에 다른 사람이랑 이야기할 기회가 생기면 굉장히 까칠하게 대답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느끼던 저는 나이가 들어서 성격이 이상해지고 있다고만 생각했습니다.
복직 후에도 회사일에도, 집안일에도 이유없는 짜증과 화가 느껴짐을 조절할 수 없어서 가끔은 가족에게(특히 아니에게) 감정을 배출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감정의 들끓음이 어느정도 잦아든 건 약 복용이후였습니다. 약 복용 이후 찾아온 너무나 평온한 정신에 깜짝 놀랐습니다. 우울한 감정 뿐만 아니라 이런 오락가락하는 감정도 약으로 누를 수 있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징후 2 :무기력함이 나를 지배하고, 일상생활이 고통스럽다.
병원에 방문하기 전까지의 저는 굉장히 무기력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집안일이든 회사일이든 끌려다니고 내 선택이 없이 어쩔 수 없이 한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내 외부의 상황과 상관없이 모든 것이 부정적이고 절망적으로만 느껴졌습니다. 육아를 할 때는 그저 아이의 반응에 이끌려다니는 기계가 된것만 같아 기분이 저조했습니다. 회사에서는 이런저런 상황에 휩쓸려서 대응만 하느라 내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업무는 할 수 업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안일도 힘들고 회사일도 힘든데 힘든 시기가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을 것만 같아 절망스러웠습니다. 일상 자체가 너무 힘들어서 꾸역꾸역 버티지만, 그냥 모든 걸 끝내는게 차라리 더 행복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저 그 과정에 수반되는 고통이 무서웠기 때문에 실행하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죠.
이런 생각도 우울증 치료를 시작한 이후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분명 현재 기계같은 패턴의 삶을 살고 있지만 그 속에는 내가 좋아하는 부분도,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무기력함이 많이 가시면서 밥 하는 것, 청소하는 것, 회사 출근, 씻는 것 등등의 일상을 힘겹지 않게 살아낼 수 있습니다.
징후 3 : 의욕은 사라지고, 인생은 노잼이다.
무기력과 연관될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병원 가기 직전에 저는 모든 것이 재미가 없었습니다. 일은 당연히 집중이 안 되어서 가만히 앉아서 모니터를 보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취미생활도 흥미를 잃어갔습니다. 제가 좋아했던 취미인, 때때로 밤을 새면서까지 즐기던 웹소설 읽는 것이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게임도 머리가 복잡해서 영 집중을 하지 못했습니다. 유튜브 영상 보는 것도 머릿속에 들어오질 않아 보다 끄다를 반복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모든 게 재미가 없고 싫증이 나서 그저 자는 것만이 안식일 뿐이었습니다.
약 복용 이후에는 인생의 재미와 자기계발을 다시 찾아오고 있습니다. 웹소설을 보면서 다시 하루의 낙을 삼습니다. 그리고 병원 방문 직전에는 불가능했었던 목표를 세워서 하는 활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블로그에 포스팅을 열심히 올려서 조회수를 늘려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체지방을 빼고 다리 근육을 늘리겠단 목표로 아침에 일어나서 스쿼트 하루에 하나씩 횟수 늘려서 하기도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정신과 우울증 처방약을 복용하면서 개선된 기분들에 대해 적어보았습니다. 제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러한 느낌을 많이 받고 있다면 병원에 꼭 방문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의견이긴 하지만, 정신과 치료는 의지로는 다스릴 수 없는 마음의 고통을 덜어주어 다시 시작할 힘을 줄 수 있습니다. 마치 허리디스크로 꼼짝도 못하는 사람에게 바로 운동하라고 하지 않고 어느 정도 치료를 해 준 다음에 재활훈련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울감으로 고통을 겪으시는 한 분이라도 제 글을 보고 꼭 병원에 가시기를 빌어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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